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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반대운동 선거법 위반" 파문…국민 눈·귀 막은 선관위 (경향신문)

작년 하반기의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공직선거법이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정치적 논쟁을 저해한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러한 논란은 2000년,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특정 후보들에 대한 낙선 운동을 펼칠 때 이미 벌어진 바 있다. 그 당시에도 사회 운동 차원에서 특정한 기준에 의해 '당선되지 말아야 할' 후보들을 선별하는 것이 온당한 행위인가에 대한 논쟁은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의 변화처럼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 일체를 차단한다는 발상은 적어도 그 당시에는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습지 않은가. 대통령 선거 때에도 노골적으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언론이나 집단으로 기자 회견을 열어 특정 후보 지지 의사를 표명한 유명 인사들은 제재 대상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인터넷 게시판이나 자기 블로그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할 만한 정치적 견해를 타이핑한 장삼이사들은 선거법 위반 사범이 되다니, 상식적으로는 법적 규제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나?

대운하 문제가 선거에서의 쟁점이냐 아니냐, 특정 정당의 공약으로 볼 수 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위법으로 규정한 선관위의 결정 자체가 역설적으로 더 뜨거운 논쟁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서는 인터넷에 대한 규제 이야기는 안 나오지만, 아마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BBK 동영상'이 도처에 퍼지고 또 삭제되고 그런 사이클을 반복한 것처럼, '대운하'에 대한 언급을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올리는 순간 검찰로부터 소환장을 받는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러한 현상을 법적 원칙에서 벗어난 일종의 이상 현상(anomaly)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것이 인터넷에 대한 한국 사회의 규제 방식이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난 케이스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명분만으로는 얼마나 '순수'하고 '이상적'인가,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각종 유해한 행위를 막기 위해 공직선거법에 의거해 강력하게 규제를 집행하셨단다.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질 수 있는 명예훼손을 막고 인터넷 사용자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실명제가 아닌'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도입하셨단다. 온라인게임 중독을 막고 사용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 게임 시간을 5시간으로 제한하는 피로도 시스템도 입안하려고 하셨단다(그러다 여론의 반발에 잠시 주춤한 듯 하지만). 나이브하게 '국민 보호'를 내세우지만 그런 식으로 점차 '할 수 있는 행위'의 경계를 그어 버리는 방식. 물론 평소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보호해야 할 예외적 상황이 오면 이게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정보화에 의한 개개인의 규제는 오히려 예전보다 용이해졌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중국 작업장에서 늘 하듯이) 남의 주민등록번호를 훔쳐 도용할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평범한 인터넷 사용자들 대부분은 자기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번호, 소재지 주소, 직업 등까지 모두 입력하고서야 '한국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처지이다. 주민등록제 같은 기존의 통제 시스템이 정보화를 거치면서 비동기적이면서 보편적인 시스템으로 재정립되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공적 발언조차 하기 어렵고 정치적으로 '위험한' 콘텐츠는 외국 서버에 망명이라도 신청해야 할(유튜브에 이주한 YTN 돌발영상만 해도) 지경이다. 갈수록 감시와 통제는 더 쉬워지는 세상. 그냥 요즘 계속 읽고 있는 주제와도 연관성이 있어서 그냥 끄적대어 보는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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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3 17:13 2008/04/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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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rence Lessig and H. Kim

메릴 님이 찍어주신 사진 (그런데 날짜가 왜 하루 앞당겨서 표시됐는지는 미스터리)


지난 3월 14일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에서 개최된 Creative Commons Korea Conference에 갔다가, 『코드 (Code and Other Laws of Cyberspace, 2000)』, 『The Future of Ideas (2002)』, 『자유문화 (Free Culture, 2004)』의 저자이자 Creative Commons의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인 Lawrence Lessig (Stanford 법대 교수)과 찍은 사진. 이 날 정작 Lessig 교수가 맡은 기조연설에서 Creative Commons가 표방하는 보다 자유로운 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 외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는 Change Congress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면서 미국 곳곳의 유권자가 자기 지역의 정치인의 각종 발언, 의정 활동, 정치 자금의 출처 등 민감한 정보들을 공유하며 공적 감시를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정치 참여의 위키화(Wiki化)'를 주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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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19:30 2008/03/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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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난 소식이지만, Cybernetnews.com에 올라온 (비교적 최신의) 웹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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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장조사기관 Net Applications에서 약 18개월 가량 웹브라우저 시장의 추이를 추적한 결과 2006년 8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의 시장 점유율은 83.05%에서 74.88%로 8% 이상 감소했고 같은 기간 파이어폭스(Firefox)는 11.84%에서 17.27%로 5% 이상 증가했다. 애플의 사파리(Safari)도 3.21%에서 5.70%까지 비중이 늘었으니 상당한 약진을 한 편이다. 그에 비해 오페라(Opera)는 0.64%에서 시작하여 0.42%까지 떨어졌다가 가장 최근 데이터로는 0.69%로 돌아왔으니 사실상 '본전'을 유지한 셈이고, 넷스케이프(Netscape)는 그 동안 오페라보다 높은 점유율을 유지해 왔으나(0.89%→0.68%) 지난 3월 1일자로 공식 지원이 종료되어 이제 수명을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윈도 98에 인터넷 익스플로러 4가 번들되기 시작한 이후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해 왔던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비중이 이제는 전체의 3/4까지 축소되었고, 반면 100명 중 17명 가량은 (그 옛날 넷스케이프의 후신인) 파이어폭스를 쓸 정도로 판도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 되겠다. 하지만 윈도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여 액티브X 애플릿을 돌리지 않으면 인터넷 뱅킹도, 오픈마켓에서 쇼핑도, 연말 세금 정산도 할 수 없는 국내에서 파이어폭스를 비롯한 '비(非)IE 웹브라우저'들의 저변 확대는 여전히 요원하다. (게다가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가 들어서고 나니 공정거래위원회는 어차피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고 있으니 그 웹브라우저만 지원했다고 해서 "소비자의 이익을 현저히 저해하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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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2 20:31 2008/03/2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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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 3.1 시기부터 15년도 넘게 윈도 PC를 쓰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나의 첫 인터넷 경험은 윈도 PC가 아닌 매킨토시에서 이루어졌다. 그 때는 아직 애플의 새로운 신화를 열어젖힌 아이맥 G3가 나오기도 전인 1996년 즈음이었는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를 처음으로 월드와이드웹에 인도한 컴퓨터 기종은 애플 매킨토시 퍼포마 6300 데스크탑이었다(겨우 기가바이트 단위의 하드디스크가 나오고 8~16MB의 시스템 메모리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에는 이것도 '최신 기종'에 속했다). 집에 있는 '내 컴퓨터'는 아니었고 학교 컴퓨터실에 설치된 공용 컴퓨터였지만 어쨌든 이 매킨토시가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 버린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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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쓰던 브라우저는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때 Google은 있지도 않았지만……

그 당시에 매킨토시에서 구동되었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버전이 아마 2.xx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2.0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내세워 본격적으로 브라우저 시장을 잡아먹기 이전에 사실상 확고부동한 선두를 유지하던 소프트웨어였다), 당시에 쓸만한 웹사이트는 야후! 정도를 빼면 대학 서버 중심의 개인 홈페이지나 그 때 막 생기기 시작했던 기업 소개 웹사이트 정도로 매우 미미했고 더욱이 국내 웹사이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그 때만 해도 PC통신이 '주류'를 차지했고 인터넷은 그 존재가 겨우 국내에 소개되는 형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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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당시의 야후! 웹사이트 모습.

Google은 관두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직 MSN을 우리가 알고 있는 PC통신 비슷한 서비스로 키울 생각만 하고 있었던 시기이니 쓸만한 웹사이트는 야후를 통해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검색 사이트는 자동으로 인터넷을 탐색하여 새로운 페이지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로봇이 비교적 초보적인 수준이었고, 사람들이 직접 웹사이트를 분류하여 정리한 색인을 뒤지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그래도 상대적으로 적었던 웹사이트 수를 감안하면 비교적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했다). 지금은 비참하게 몰락하다 못해 존재감이 없다시피 한 알타비스타익사이트 등도 이 시기에는 야후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다. 웹 페이지의 절대량이 매우 적었고 그나마 90% 이상은 영어로 된 문서들로만 가득한 인터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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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초의 핫메일 초기 페이지.

그 당시 무료로 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싶으면 핫메일을,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으면 지오시티즈를 택해야 했다. 대학이나 기업에서도 거기에 속한 개인들에게 이메일 주소를 발급하기가 복잡했으며 '전자우편' 하면 기껏해야 같은 PC통신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것 정도를 떠올리던 시기에, 그것도 무료로 이메일 주소를 발급해 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참고로 다음이 한메일을 만든 시점은 핫메일 출범보다 11개월 가량 늦은 97년 5월이다). 지오시티즈는 인터넷에도 마치 미국의 행정 구역처럼 질서정연한 '사이버 주소 체계'를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http://www.geocities.com/SiliconValley/Pines/0000' 식으로 복잡한 주소의 무료 홈페이지를 발급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접속하기조차 이루 불편할 데 없지만 그 때는 이것이 획기적인 서비스였다(국내에 홈페이지 만들기 붐이 일기도 한참 전의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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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의 일촌 비슷한 개념을 이미 90년대에 실험했던 식스디그리스닷컴.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 없고 느리기만 한 인터넷이었는데(고작 1메가바이트의 데이터를 다운로드받는데 5분 이상 걸리고, 기껏해야 개인들이 호기심에 만들어놓은 홈페이지나 썰렁한 기업 소개 페이지 정도나 보는 정도였던) 그 때 처음 조우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기억이 상당히 '낭만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영어로 되어 있는 페이지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메일이나 홈페이지를 통해서 불특정 다수의 '세계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꿈,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공간에서 스스로를 보다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처음의 경험을 특징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메일 계정에 들어오는 메일 100개 중 90개 이상이 스팸메일인 현재와는 달리, 그 당시의 이메일은 태평양이나 유라시아 건너편에서 역시 세계 반대쪽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호기심에 가득찬 누군가로부터 온 메시지를 전달하는 '빠른 우편' 같은 것이었다. 조악하게나마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으면 가끔 그 곳에 우연히 들르는 누군가로부터 친근한 어조의 인사를 받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비아그라나 가짜 학위증서, 단백질 보충제를 판다고 무차별적으로 광고를 뿌려대는 로봇은 없었으니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스파이웨어, 온라인 사기, '악플' 등의 병리적 현상은 물론이고 국가, 언어별로 분리된 인터넷, 웹 표준 준수 여부, 블로그, 비디오 공유 사이트 등을 그 당시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 10여 년 사이에 전화선 모뎀과 초보적인 HTML만으로는 꿈도 꾸기 힘들었던 많은 것들이 실현되었지만 인터넷이 점차 지겨워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첫경험' 당시의 꿈이 상당 부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더 이상 인터넷을 통해 지구상 다른 어딘가 사는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꿈을 꾸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이메일을 쓸 때 손으로 쓰는 편지만큼 한 줄 한 줄마다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고 마음을 담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들이 국가, 성별, 계층, 종교, 지역 등의 배경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 글쎄, 나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 환상이 끝내 현실로 귀환할 미래의 어느 날을 애써 기다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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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6 20:19 2008/03/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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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우연히 s 씨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앞으로의 '밥그릇'을 위해서는 '정보'와 다른 중요한 영역을 묶어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를 들었다.

하기사 정보사회에 대한 논의는 90년대에 신나게 '유행'을 타다가 닷컴 거품이 꺼지고 인터넷에 대한 규제가 상당수 도입되고 무엇보다 정보기술이 그냥 '일상'의 일부분이 되면서 그 열기가 빠르게 식어버렸다. 단순히 새로운 소재라고 해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나버린지 이미 오래라는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정보와 조직 생태학을 연결해 사고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인터넷의 대규모 보급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의 정보화한 조직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변화했는지에 대한 중간 결산 같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어째서 대다수 포털들은 (다소의 차별화한 서비스들을 선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형태로 발달하는가? 어째서 한국의 게임 산업은 기술적으로든 장르적으로든 매우 동질적인 구조를 가지는가? 포털, 인터넷 언론, 쇼핑몰, 블로그 등으로 구성된 '한국어 인터넷'은 수평적이고 느슨한 연결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어느 정도 수직적인 계열화를 보여주는가? 그러고 보면 특히 CJK에서 국민 국가의 사회적, 문화적 경계와 인터넷에서의 언어 장벽이 상당 부분 일치하는 현상도 설명되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경제사회학이 각광을 받다가 요즈음의 화두는 문화사회학으로 넘어가는 듯 한데, 이런 때일수록 남들이 덜 관심을 가지는 분야를 '내 밥그릇'으로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남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영역이라는 건 어떤 면에서 자기가 가장 먼저 잡초를 헤치고 길을 닦는 '삽질'을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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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17:24 2008/03/13 17:24
풀어쓰기 2008/03/13 17:24 by metav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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