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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스토리베리 콘텐츠는 GOG.com이라는 고전게임 전문 판매 웹사이트를 소개하는 내용의 프레젠테이션입니다. 아주 오래된 고전 게임부터 불과 몇 년 전에 나온 근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게임들을 DRM처럼 복잡하고 불편한 장치 없이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곳인데, 자세한 특징들은 위에 다 나와 있으므로 그것을 재생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후 내용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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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요즈음은 '디지털 싱글'이나 '음원'이라고 오로지 파일 형태로만 유통되는 음악도 많이 생기기는 했습니다. [돌아가기]
  2. 슈퍼오디오CD나 DVD오디오 같은 형식도 나왔고, MP3 같은 파일로 다운로드하는 서비스가 많이 일반화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아직 CD가 퇴출당한 건 아니니까요. [돌아가기]
  3. 아, 물론 DOSBOX는 엄격히 에뮬레이터의 한 종류(x86용 도스 에뮬레이터)입니다만 여기에서는 논의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하게 서술한 겁니다. [돌아가기]
  4. 고전 게임들뿐만 아니라 일부 인디 게임들처럼 '크기가 작은' 게임들을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흡수하고 있습니다. [돌아가기]
  5. 그만큼 만약 GOG.com에서 정성스레 판매한 게임들이 여기저기 '어둠의 경로'를 통해 떠돌면 장기적으로 매출에 타격이 올지도 모릅니다. [돌아가기]
2008/12/16 01:50 2008/12/16 01:50
풀어쓰기 2008/12/16 01:50 by metav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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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og.com 배포 이벤트 결과 발표!

    : Pig-Min : Post Indie Gaming 2008/12/19 01:53 Delete

    약 2주일 전 시작했던, 스토리베리로 만든 gog.com 컨텐츠 배포 이벤트의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이걸 퍼가는 이벤트였죠.먼저 참가해주신 분들의 목록부터.* 총 참가인원 : 11명.그렇다 고전게임

"대운하 반대운동 선거법 위반" 파문…국민 눈·귀 막은 선관위 (경향신문)

작년 하반기의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공직선거법이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정치적 논쟁을 저해한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러한 논란은 2000년,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특정 후보들에 대한 낙선 운동을 펼칠 때 이미 벌어진 바 있다. 그 당시에도 사회 운동 차원에서 특정한 기준에 의해 '당선되지 말아야 할' 후보들을 선별하는 것이 온당한 행위인가에 대한 논쟁은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의 변화처럼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 일체를 차단한다는 발상은 적어도 그 당시에는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습지 않은가. 대통령 선거 때에도 노골적으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던 언론이나 집단으로 기자 회견을 열어 특정 후보 지지 의사를 표명한 유명 인사들은 제재 대상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인터넷 게시판이나 자기 블로그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할 만한 정치적 견해를 타이핑한 장삼이사들은 선거법 위반 사범이 되다니, 상식적으로는 법적 규제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나?

대운하 문제가 선거에서의 쟁점이냐 아니냐, 특정 정당의 공약으로 볼 수 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위법으로 규정한 선관위의 결정 자체가 역설적으로 더 뜨거운 논쟁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서는 인터넷에 대한 규제 이야기는 안 나오지만, 아마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BBK 동영상'이 도처에 퍼지고 또 삭제되고 그런 사이클을 반복한 것처럼, '대운하'에 대한 언급을 게시판이나 블로그에 올리는 순간 검찰로부터 소환장을 받는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러한 현상을 법적 원칙에서 벗어난 일종의 이상 현상(anomaly)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것이 인터넷에 대한 한국 사회의 규제 방식이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난 케이스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명분만으로는 얼마나 '순수'하고 '이상적'인가,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각종 유해한 행위를 막기 위해 공직선거법에 의거해 강력하게 규제를 집행하셨단다.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질 수 있는 명예훼손을 막고 인터넷 사용자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실명제가 아닌'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도입하셨단다. 온라인게임 중독을 막고 사용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 게임 시간을 5시간으로 제한하는 피로도 시스템도 입안하려고 하셨단다(그러다 여론의 반발에 잠시 주춤한 듯 하지만). 나이브하게 '국민 보호'를 내세우지만 그런 식으로 점차 '할 수 있는 행위'의 경계를 그어 버리는 방식. 물론 평소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보호해야 할 예외적 상황이 오면 이게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정보화에 의한 개개인의 규제는 오히려 예전보다 용이해졌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중국 작업장에서 늘 하듯이) 남의 주민등록번호를 훔쳐 도용할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평범한 인터넷 사용자들 대부분은 자기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번호, 소재지 주소, 직업 등까지 모두 입력하고서야 '한국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처지이다. 주민등록제 같은 기존의 통제 시스템이 정보화를 거치면서 비동기적이면서 보편적인 시스템으로 재정립되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공적 발언조차 하기 어렵고 정치적으로 '위험한' 콘텐츠는 외국 서버에 망명이라도 신청해야 할(유튜브에 이주한 YTN 돌발영상만 해도) 지경이다. 갈수록 감시와 통제는 더 쉬워지는 세상. 그냥 요즘 계속 읽고 있는 주제와도 연관성이 있어서 그냥 끄적대어 보는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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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3 17:13 2008/04/03 17:13
풀어쓰기 2008/04/03 17:13 by metav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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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현재 4월 1일이지만, 시차로 인해 북아메리카 지역은 여전히 3월 31일이다. 바로 그 2008년 3월 31일,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Mozilla Firefox), 이메일 관리 프로그램 썬더버드(Mozilla Thunderbird)를 비롯한 오픈소스 인터넷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앞장서 온 모질라 재단(Mozilla Foundation)이 10주년을 맞았다.


모질라 10주년 이미지 열어 보기.

모질라 재단의 역사는 1998년 3월 31일 당시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윈도에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를 통합시켜 시장을 장악해 나가던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점차 밀리던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Netscape Communications)이 자사의 커뮤니케이터(Netscape Communicator) 웹브라우저의 소스 코드를 Mozilla.org을 통해 공개하면서 시작되었다. 모질라(Mozilla)는 넷스케이프의 마스코트인 동명의 빨간 색 공룡으로부터 유래되었는데,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커뮤니케이터 시절부터 지금의 파이어폭스에 이르기까지 넷스케이프-모질라로 이어지는 계통의 웹브라우저들은 웹사이트 방문시 서버에 보내는 사용자 에이전트 신호를 'Mozilla/<버전>'으로 표기한다.

파이어폭스가 모질라에서 제작하는 유일한 웹브라우저는 아니지만 가장 잘 알려진 프로젝트인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파이어폭스가 세계 웹브라우저 시장 점유율의 17%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들린 것처럼, 역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인 리눅스(Linux)에 비해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져 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 보급 측면에서는 더 넓은 저변을 확보하고 있다(물론 그것은 응용 프로그램에 비해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기가 더 어려운, 소비자 위치에서도 기존에 쓰던 제품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운영체제의 특징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액티브X를 쓸 수 밖에 없는 인터넷 뱅킹이나 쇼핑, 그밖에 인터넷 익스플로러에만 '최적화'된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용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웹서핑은 파이어폭스로 수행하고 있다. 넷스케이프의 유산이 모질라를 통해 파이어폭스로 다시 '현신'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인터넷 환경은 어쩌면 더욱 취약하고 불안정해졌을지 모르는 일이다(인터넷 익스플로러로 여기저기 방문할 때마다 심심찮게 뜨는 정체불명의 액티브X 설치 창이 뜨는 걸 보면 더더욱).

한국에도 모질라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주된 역할이 파이어폭스와 썬더버드 같은 간판 프로그램들의 한글화를 지원하는 것 정도라, '해외의 좋은 기술을 국내에 정착시킨다'는 의미를 가졌다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여기에서도 모질라 10주년을 맞아서 작은 이벤트를 열었다. 비록 국내에서는 이제 겨우 파이어폭스 같은 비(非)IE, 대안 웹브라우저가 알려지기 시작하는 실정이지만, 앞으로의 10년은 지금까지의 10년보다는 보다 개방적이고 다양한 기술들이 웹을 수놓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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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1 12:47 2008/04/01 12:47
풀어쓰기 2008/04/01 12:47 by metav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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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9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마다 각 정당과 후보들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즐비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집에서 학교로 오고가는 길에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게 통일교 계열의 평화통일가정당 현수막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이 정당은 245개 지역구 모두에 후보자를 냈기 때문. 사실상 이번 선거는 통합민주당, 한나라당을 비롯한 거대 정당들의 혈투가 되겠지만 선거만 앞두면 비온 뒤 버섯 자라듯 튀어나오는 군소정당들도 은근히 많다.

그렇잖아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이미 등록된 정당이나 창당 준비 중인 정치세력들을 정리하여 웹사이트에 올려놓고 있는데, 이 정당 자료를 보면 통합민주당,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익히 알려진 정당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상식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정당들도 같이 수록되어 있다.

선관위 정당 자료에서 발췌

한국에도 온갖 희한한 정당들 많다.


목록을 쭉 읽다 보면 개혁당, 경제공화당, 경제통일당, 국제녹색당, 국민당, 문화예술당, 선진한국당, 시민당, 자유평화당, 통일한국당, 평화녹색당, 평화통일당 정도는 그나마 '상식' 수준의 작명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보면 그 이름이 그 이름 같고 '대충 괜찮아 보이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만든 흔적이 보이니까……. 구국참사람연합, 국민실향안보당, 기독사랑실천당, 네티즌민주개혁당, 새마을당, 시스템미래당, 평화통일가정당,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 정도 되면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는 정당인 것인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보다도 더 '선을 넘어가'면, 스스로가 정당인지 국가인지 혼동하는 듯한 국민평화연방, 신흥종교단체 이름이 그대로 정당에 붙은 게 아닐까 의심되는 참희망! 무궁한 행복당이 창당 준비 중이다. 생도당에 이르면 이 정당은 사관학교 출신만 입당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며, 한편 한국이 핵폭탄을 보유해야 한다는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는 핵나라당은 한나라당의 패러디가 아닐까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름만으로 진정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고 즐겁게 하는 궁극의 정당은 아마 천국의황제당이 아닐까 싶다. 아마 소위 '아스트랄함으로는 지존급'의 정당일 듯.

아마 천국의황제당 웹사이트가 있었다면 인터넷에서도 그 허황됨이 아마 최고의 '포스'를 발산했겠지만, 당분간 그 자리는 "2006년 11월 3일 새벽 4시 30분경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 CCA DM-105호실에서...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화되는 생생한 과정"을 꿈꾸고 이를 "하늘이 대한민국에게 내린 계시"라고 설파하는 핵나라당 웹사이트가 차지하지 않을까?

핵나라당 웹사이트

님하 짱드삼.





그리고 부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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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9 01:30 2008/03/29 01:30
풀어쓰기 2008/03/29 01:30 by metav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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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rence Lessig and H. Kim

메릴 님이 찍어주신 사진 (그런데 날짜가 왜 하루 앞당겨서 표시됐는지는 미스터리)


지난 3월 14일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에서 개최된 Creative Commons Korea Conference에 갔다가, 『코드 (Code and Other Laws of Cyberspace, 2000)』, 『The Future of Ideas (2002)』, 『자유문화 (Free Culture, 2004)』의 저자이자 Creative Commons의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인 Lawrence Lessig (Stanford 법대 교수)과 찍은 사진. 이 날 정작 Lessig 교수가 맡은 기조연설에서 Creative Commons가 표방하는 보다 자유로운 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 외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는 Change Congress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면서 미국 곳곳의 유권자가 자기 지역의 정치인의 각종 발언, 의정 활동, 정치 자금의 출처 등 민감한 정보들을 공유하며 공적 감시를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정치 참여의 위키화(Wiki化)'를 주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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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19:30 2008/03/24 19:30
풀어쓰기 2008/03/24 19:30 by metav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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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난 소식이지만, Cybernetnews.com에 올라온 (비교적 최신의) 웹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이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터넷 시장조사기관 Net Applications에서 약 18개월 가량 웹브라우저 시장의 추이를 추적한 결과 2006년 8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의 시장 점유율은 83.05%에서 74.88%로 8% 이상 감소했고 같은 기간 파이어폭스(Firefox)는 11.84%에서 17.27%로 5% 이상 증가했다. 애플의 사파리(Safari)도 3.21%에서 5.70%까지 비중이 늘었으니 상당한 약진을 한 편이다. 그에 비해 오페라(Opera)는 0.64%에서 시작하여 0.42%까지 떨어졌다가 가장 최근 데이터로는 0.69%로 돌아왔으니 사실상 '본전'을 유지한 셈이고, 넷스케이프(Netscape)는 그 동안 오페라보다 높은 점유율을 유지해 왔으나(0.89%→0.68%) 지난 3월 1일자로 공식 지원이 종료되어 이제 수명을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윈도 98에 인터넷 익스플로러 4가 번들되기 시작한 이후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해 왔던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비중이 이제는 전체의 3/4까지 축소되었고, 반면 100명 중 17명 가량은 (그 옛날 넷스케이프의 후신인) 파이어폭스를 쓸 정도로 판도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 되겠다. 하지만 윈도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여 액티브X 애플릿을 돌리지 않으면 인터넷 뱅킹도, 오픈마켓에서 쇼핑도, 연말 세금 정산도 할 수 없는 국내에서 파이어폭스를 비롯한 '비(非)IE 웹브라우저'들의 저변 확대는 여전히 요원하다. (게다가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가 들어서고 나니 공정거래위원회는 어차피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이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고 있으니 그 웹브라우저만 지원했다고 해서 "소비자의 이익을 현저히 저해하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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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2 20:31 2008/03/22 20:31
풀어쓰기 2008/03/22 20:31 by metav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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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상대방은 내게 명함을 주는데 나는 나 자신을 소개할 종이조각(!) 하나 없을 때 발생하는 곤란한 상황을 타개해 보고자, 지난 주에 유니크카드 나노 팩을 주문했다. 유니크카드는 (작년 말 Creative Commons Hope Day에서 뵌 적 있는) 펭도라는 분이 지난 해 설립한 A10Studio에서 제작하는 일종의 '패션 명함'이다. 사실 말은 명함이지만, 기업이나 관공서 같은 기관에 속해 있어 자신의 소속과 직함, 연락처를 밝히는 기능의 명함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의 제품이다.

배송받은 유니크카드

오늘 받은 유니크카드 나노팩(폰카 화질이 구려서 유감).


유니크카드 클로즈업

유니크카드 클로즈업.


카드 50장짜리 일반팩이나 (최근 출시된) 25장짜리 나노팩 단위로 판매되는데, 카드 앞면에는 미리 정해진 테마의 이미지들이 인쇄되어 나온다(다소의 비용을 더 부담하면 자신이 정한 626×626픽셀 크기의 이미지들도 인쇄할 수 있다). 뒷면의 윗부분에는 각기 다른 문구를 넣을 수 있어 카드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구절이나 간단한 소개 글귀를 쓰기에 좋다. 아랫부분에는 모든 카드에 공통적인 문구가 들어가는데, 여기에 자신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넣으면 적절하다.

나야 일반 기업이나 정부에 고용되어 있는 몸이 아닌지라(게다가 밥벌이할 직업이 없는 사람이 명함을 만든다는 건 은근히 우스운 일처럼 보인다) 일종의 대안으로 선택한 게 이 카드인데, 장당 몇십 원 단위의 일반 명함에 비하면 몇 배 비싼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인쇄하고자 하면 가격 면에서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래도 나 자신을 소개하는 기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기존 명함의 형식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카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매력이다. 일정량 이상의 판매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서 가격이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유니크카드에 대해 더 궁금하면, A10Studio를 소개한 매거진 정글 기사를 보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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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23:22 2008/03/19 23:22
풀어쓰기 2008/03/19 23:22 by metav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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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 3.1 시기부터 15년도 넘게 윈도 PC를 쓰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나의 첫 인터넷 경험은 윈도 PC가 아닌 매킨토시에서 이루어졌다. 그 때는 아직 애플의 새로운 신화를 열어젖힌 아이맥 G3가 나오기도 전인 1996년 즈음이었는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를 처음으로 월드와이드웹에 인도한 컴퓨터 기종은 애플 매킨토시 퍼포마 6300 데스크탑이었다(겨우 기가바이트 단위의 하드디스크가 나오고 8~16MB의 시스템 메모리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에는 이것도 '최신 기종'에 속했다). 집에 있는 '내 컴퓨터'는 아니었고 학교 컴퓨터실에 설치된 공용 컴퓨터였지만 어쨌든 이 매킨토시가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 버린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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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쓰던 브라우저는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때 Google은 있지도 않았지만……

그 당시에 매킨토시에서 구동되었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버전이 아마 2.xx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2.0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내세워 본격적으로 브라우저 시장을 잡아먹기 이전에 사실상 확고부동한 선두를 유지하던 소프트웨어였다), 당시에 쓸만한 웹사이트는 야후! 정도를 빼면 대학 서버 중심의 개인 홈페이지나 그 때 막 생기기 시작했던 기업 소개 웹사이트 정도로 매우 미미했고 더욱이 국내 웹사이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그 때만 해도 PC통신이 '주류'를 차지했고 인터넷은 그 존재가 겨우 국내에 소개되는 형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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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당시의 야후! 웹사이트 모습.

Google은 관두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직 MSN을 우리가 알고 있는 PC통신 비슷한 서비스로 키울 생각만 하고 있었던 시기이니 쓸만한 웹사이트는 야후를 통해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검색 사이트는 자동으로 인터넷을 탐색하여 새로운 페이지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로봇이 비교적 초보적인 수준이었고, 사람들이 직접 웹사이트를 분류하여 정리한 색인을 뒤지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그래도 상대적으로 적었던 웹사이트 수를 감안하면 비교적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했다). 지금은 비참하게 몰락하다 못해 존재감이 없다시피 한 알타비스타익사이트 등도 이 시기에는 야후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다. 웹 페이지의 절대량이 매우 적었고 그나마 90% 이상은 영어로 된 문서들로만 가득한 인터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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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초의 핫메일 초기 페이지.

그 당시 무료로 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싶으면 핫메일을,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으면 지오시티즈를 택해야 했다. 대학이나 기업에서도 거기에 속한 개인들에게 이메일 주소를 발급하기가 복잡했으며 '전자우편' 하면 기껏해야 같은 PC통신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것 정도를 떠올리던 시기에, 그것도 무료로 이메일 주소를 발급해 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참고로 다음이 한메일을 만든 시점은 핫메일 출범보다 11개월 가량 늦은 97년 5월이다). 지오시티즈는 인터넷에도 마치 미국의 행정 구역처럼 질서정연한 '사이버 주소 체계'를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http://www.geocities.com/SiliconValley/Pines/0000' 식으로 복잡한 주소의 무료 홈페이지를 발급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접속하기조차 이루 불편할 데 없지만 그 때는 이것이 획기적인 서비스였다(국내에 홈페이지 만들기 붐이 일기도 한참 전의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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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의 일촌 비슷한 개념을 이미 90년대에 실험했던 식스디그리스닷컴.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 없고 느리기만 한 인터넷이었는데(고작 1메가바이트의 데이터를 다운로드받는데 5분 이상 걸리고, 기껏해야 개인들이 호기심에 만들어놓은 홈페이지나 썰렁한 기업 소개 페이지 정도나 보는 정도였던) 그 때 처음 조우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기억이 상당히 '낭만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영어로 되어 있는 페이지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메일이나 홈페이지를 통해서 불특정 다수의 '세계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꿈,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공간에서 스스로를 보다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처음의 경험을 특징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메일 계정에 들어오는 메일 100개 중 90개 이상이 스팸메일인 현재와는 달리, 그 당시의 이메일은 태평양이나 유라시아 건너편에서 역시 세계 반대쪽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호기심에 가득찬 누군가로부터 온 메시지를 전달하는 '빠른 우편' 같은 것이었다. 조악하게나마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으면 가끔 그 곳에 우연히 들르는 누군가로부터 친근한 어조의 인사를 받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비아그라나 가짜 학위증서, 단백질 보충제를 판다고 무차별적으로 광고를 뿌려대는 로봇은 없었으니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스파이웨어, 온라인 사기, '악플' 등의 병리적 현상은 물론이고 국가, 언어별로 분리된 인터넷, 웹 표준 준수 여부, 블로그, 비디오 공유 사이트 등을 그 당시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 10여 년 사이에 전화선 모뎀과 초보적인 HTML만으로는 꿈도 꾸기 힘들었던 많은 것들이 실현되었지만 인터넷이 점차 지겨워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첫경험' 당시의 꿈이 상당 부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더 이상 인터넷을 통해 지구상 다른 어딘가 사는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꿈을 꾸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이메일을 쓸 때 손으로 쓰는 편지만큼 한 줄 한 줄마다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고 마음을 담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들이 국가, 성별, 계층, 종교, 지역 등의 배경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 글쎄, 나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 환상이 끝내 현실로 귀환할 미래의 어느 날을 애써 기다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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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6 20:19 2008/03/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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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08 Creative Commons Korea Conference가 열렸는데, 기조연설에서 로렌스 레식 교수가 한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그는 (인쇄, 방송 매체에 최적화한 형태로 제도화되어 온) 현재의 저작권 체제를 구(舊) 소비에트 연방에 비유하였다. 레식에 따르면 1989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소비에트가 몰락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1976년에는 아직 그것을 예측하기 너무 이른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76년과 1989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당신은 이미 이 거대한 구조가 파탄에 놓일 것을 알고 있다면 그것이 영구히 천 년 만 년 지속될 것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이 체제의 종말을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그는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기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자신은 현재의 (억압적인) 저작권 체제에서 보다 합리적인 권리 보호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흐름에서 '고르바초프 같은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다. 소비에트와 고르바초프에 대한 비유가 그다지 타당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기존의 저작권,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지적 재산권 체제는 정작 보호받아야 할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용이하게 행사할 수 있는 표현 수단을 제공하지도 못하며 창작물을 이용하려는 다른 창작자·소비자들을 ('저작권 침해'의) 함정에 빠뜨린다는 지적은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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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6 08:11 2008/03/1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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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우연히 s 씨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앞으로의 '밥그릇'을 위해서는 '정보'와 다른 중요한 영역을 묶어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를 들었다.

하기사 정보사회에 대한 논의는 90년대에 신나게 '유행'을 타다가 닷컴 거품이 꺼지고 인터넷에 대한 규제가 상당수 도입되고 무엇보다 정보기술이 그냥 '일상'의 일부분이 되면서 그 열기가 빠르게 식어버렸다. 단순히 새로운 소재라고 해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나버린지 이미 오래라는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정보와 조직 생태학을 연결해 사고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인터넷의 대규모 보급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의 정보화한 조직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변화했는지에 대한 중간 결산 같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어째서 대다수 포털들은 (다소의 차별화한 서비스들을 선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형태로 발달하는가? 어째서 한국의 게임 산업은 기술적으로든 장르적으로든 매우 동질적인 구조를 가지는가? 포털, 인터넷 언론, 쇼핑몰, 블로그 등으로 구성된 '한국어 인터넷'은 수평적이고 느슨한 연결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어느 정도 수직적인 계열화를 보여주는가? 그러고 보면 특히 CJK에서 국민 국가의 사회적, 문화적 경계와 인터넷에서의 언어 장벽이 상당 부분 일치하는 현상도 설명되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경제사회학이 각광을 받다가 요즈음의 화두는 문화사회학으로 넘어가는 듯 한데, 이런 때일수록 남들이 덜 관심을 가지는 분야를 '내 밥그릇'으로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남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영역이라는 건 어떤 면에서 자기가 가장 먼저 잡초를 헤치고 길을 닦는 '삽질'을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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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17:24 2008/03/1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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