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스파이더맨 3』를 가장 먼저 보고 그 후에 1·2편을 보았기 때문에 처음 볼 당시에 스토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수는 있다(하지만 요즈음은 듣기 싫어도 워낙 스토리 요약과 스포일러로 폭격을 당하는 터라). '완성도'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전편들에 비해서는 줄거리의 응집도나 캐릭터의 매력은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스파이더맨 특유의 매력은 거부하기 어렵다. 갈수록 카메라의 한계를 시험하는 거미줄 액션이나 검은색 의상을 입은 스파이더맨 같은 요소들이 이 영화의 흥행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흠이 있다면, 평면적인 '괴물'로 나와 내내 행패를 부리다가 마지막에 감상적인 코멘트를 남기고 훌쩍 떠나는 샌드맨이나, 단순하다 못해 단세포적인 '악의 화신'으로 소모되는 베놈 같은 부실한 악당 캐릭터들이다(그보다 더 허무한 것은 뉴고블린이 갑자기 '개과천선'하는 '그 장면'일 것이다. 이런 식의 줄거리였다면 왜 이제야 저 장면이 나온 것인가?). 소니는 아마 『스파이더맨 4』를 제작할 작정이겠지만, 캐릭터들을 자꾸 속된 의미에서 '만화적'으로 만들면 곤란하다.

이 영화를 봤을 당시에는 2편의 줄거리를 복습하지 않은 상태였다. 『망자의 함』을 보고 3편에서 완결된 각종 복선과 배경을 이해한 것은 시간이 상당히 지난 후의 일이다. 따라서 줄거리 자체에 대해 논하는 것은 다소 무리겠지만, 캐릭터의 비중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매겨진 것에는 불만이 있다. 잭 스패로우와 엘리자베스 스완 사이의 균형은 들쭉날쭉하여 둘 중 누구의 이야기인지 판단하기조차 어려울 때가 있었으며, 샤오펭의 가세는 단지 스완 일행이 유럽 반대편인 싱가포르에 닿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식품 같은 역할에 불과했다. 포스터에는 잭 스패로우, 윌 터너, 엘리자베스 스완, 바르보사가 힘찬 기세를 과시했지만, 그 홍보용 이미지는 정작 본 영화에서 상당히 맥빠진 듯 했다. 심지어 하이라이트인 플라잉 더치맨과 블랙 펄의 해전마저도 상투적인 이미지로 보일 정도였다. 전편을 본 시리즈의 팬들은 실망했을 것이고, 시리즈에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활극이겠지만 그 대신 줄거리를 거의 이해하지 못할 것이므로 어쨌든 문제가 있다.

2004년에 나온 『슈렉 2』가 재기발랄했던 전작의 명성을 '재탕'하려 한다는 혐의가 있었는데도 충분히 근사했던 것은 피오나 공주의 가족과 슈렉 사이의 긴장, 페어리 갓마더의 음모, 장화 신은 고양이 등의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슈렉 3』에 실망한 이유는 왕위를 찬탈하려는 프린스 차밍과 왕국을 지키려는 슈렉 사이의 갈등이 그대로 재활용되었고(감칠맛은 더 떨어진 채로) 새로 등장한 아더라는 캐릭터조차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무엇보다 고등학교에서 모두에게 멸시받는 왕따였던 아더가 '정당하게' 왕이 될 수 있다면, 연극 무대에서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어 눈물을 쏟던 프린스 차밍이 그 자리에 못 오를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버지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슈렉의 고민이나 정당한 왕위 계승자를 찾기 위한 그의 모험을 그리면서 『슈렉 3』는 시리즈 중 가장 '가족 친화적'인 주제를 담아낸 셈이 되었지만, 1, 2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발칙하면서 즐거운 기운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트랜스포머』에서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에서 이야기는 압도적인 시각효과를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이러한 '최소주의적' 관점은 『둠』과 같은 게임에서도 피력된 바 있다). 둔중한 크기의 변신로봇들이 막강한 화력으로 서로를 노리고 부딪치는 일련의 장면들은 한 편의 극영화보다는 컴퓨터그래픽 전문 스튜디오의 데모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유발했다. 그렇다 해도 이 영화가 많은 수의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요인은 그처럼 극단적이라고 할 만한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시청각적 장관에 있다. 정교한 세계관과 배경이 갖춰지지 않은 게임도 사실적인 그래픽이나 '타격감' 같은 게임플레이적 요소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어렸을적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살아있는 로봇이 인간을 지켜주는 세계를 상상했을 때만큼이나 즐겁다. 하지만 그것을 단지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만 할 경우,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더 이상 개입하고 비판할 지점이 없어질 듯한 두려움이 앞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