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지 잃어버린 파일들이 아까워서 계정을 폐가처럼 방치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작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에 싫증이 나 있었고, 데이터베이스 소실이라는 불의의 '사고'는 단지 좋은 핑계를 던져 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것 자체에 지쳐 있었다(남들처럼 많은 분량의 글을 쓰지 않았는데도).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는 의문, 그리고 나 자신이 보기에 근사한 글을 써서 올려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페이지, 한 문단은 관두고라도 한 개의 문장조차 쓰기가 무척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사실 그런 어려움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조금은 편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인터넷, 그리고 컴퓨터를 매개로 작성한 글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데이터의 수명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주기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꼼꼼하게 중요한 디지털 자료를 백업하여 보조매체에 저장한다고 해도 그 자료의 안정성은 종이에 인쇄된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CD-R 같은 개인용 광학디스크가 2년도 안 되어 읽히지 않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고, 하드디스크의 수명도 이론상 50만 시간이지만 주변 환경에 따라서는 몇 해도 못 가 수명이 다 할 수도 있다.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서 운영되는 서버들도 그런 하드웨어적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요지는, 디지털 형태로 만든 글이나 사진, 영상 등은 아날로그 형태로 만든 것들보다 의외로 쉽게 소실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몇 달 전에 사라져 버린 수십 개의 포스트를 조금은 냉정하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블로그를 방치하는 동안 미투데이나 플레이톡과 같은 소위 '미니블로그'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는 한 편의 완결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는 있었다. 많아야 250자를 넘지 않는 짧은 포맷으로 이런저런 메모를 남길 수 있고, 신속하게 다른 사람들의 짤막한 생각에 동의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점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이를 '미니블로그'라고 부르든 '한줄 댓글'이라고 부르든, 이러한 형식의 '글쓰기'와 블로그 같은 '글쓰기' 방식 사이의 간격은 갈수록 뚜렷해졌다. 전자를 가지고 놀 때에는 길어야 몇 분을 넘지 않을 만큼의 간결한 생각, 그리고 그보다도 짧은 언어로 몇 글자 써넣으면 끝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그보다는 긴 호흡, 때로는 글이 예상보다 길게 가지를 뻗어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센스를 요구했다. 애시당초 글자 수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 포맷에서는 그런 센스가 필요하지 않다. '미니블로그'는 여전히 재미있는 형식이지만,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즐겨찾던 블로그가 한동안 문을 닫았는데, 최근 우연히 다시 찾아가보니 새로운 도메인으로 부활하였다. 백 마디 말보다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사례 하나가 마음에 더 큰 위안이 되었다. 그 사이 주변 사람들 중 상당수가 블로그를 꾸준히 쓰기도 했고, 내게도 뭔가 근사한 글을 쓰는 것보다는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다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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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ead 2007/08/04 15:10 # M/D Reply
역시 모든건 종이로 뽑아야 마음이 (그나마) 놓이는.....;;;
colorio 2007/08/13 01:09 # M/D Reply
확실히 없는것 보다는 있는게 나은것 같아.